거미가 속한 협각아문(Chelicerata)의 가장 큰 특징은 입 주변에 있는 '협각(Chelicerae, 鋏角)'이라는 특별한 부속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자어 뜻을 풀이하면 '집게(鋏) 모양의 뿔(角)'이라는 의미인데, 거미의 생존과 사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협각에 대해 구조, 기능, 그리고 분류학적 특징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협각의 구조

거미의 협각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기절(Basal segment): 머리 가슴 부분에 붙어 있는 두툼한 마디입니다. 이 안에는 강력한 근육이 들어 있어 협각을 움직입니다. 아각(Fang/Unguis): 기절 끝에 달린 날카로운 바늘 모양의 구조입니다. 평소에는 기절의 홈 안에 접혀 있다가 공격할 때 튀어나옵니다. 주사기 바늘처럼 끝에 작은 구멍이 있어 독액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2. 협각의 주요 기능

협각은 곤충의 '턱'과는 기원 자체가 다르며,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1. 독액 주입: 대부분의 거미는 협각 끝의 아각을 통해 먹잇감의 몸속으로 독을 주입합니다. 이 독은 먹잇감을 마비시키거나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2. 소화 효소 주입: 거미는 씹는 턱이 없어서 고체를 먹지 못합니다. 협각을 통해 소화 효소를 주입하여 먹잇감의 내부를 액체 상태로 녹인 후 빨아먹습니다.
  3. 방어 및 공격: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수컷끼리의 싸움 등에서 무기로 사용됩니다.
  4. 도구 역할: 구멍을 파는 거미는 협각을 삽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알주머니를 옮길 때나 짝짓기 시 암컷을 고정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3. 거미의 분류를 결정하는 협각의 방향

거미강 내에서 거미를 분류할 때 협각이 움직이는 방향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 원시적인 거미 (단협류/원시고미아목, 예: 타란툴라): 협각이 위아래(수직)로 움직입니다. 이를 평행협각(Orthognath)이라고 하며, 고정된 상태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방식입니다.
  • 진화된 거미 (쌍협류/합협아목, 예: 일반적인 왕거미, 깡충거미 등): 협각이 좌우로 서로 마주 보며 움직입니다. 이를 교차협각(Labidognath)이라고 하며, 집게처럼 먹잇감을 양옆에서 꽉 잡기에 더 유리합니다.

4. 곤충의 '턱'과 무엇이 다른가?

절지동물은 크게 협각아문대악아문(Mandibulata)으로 나뉩니다. 대악아문(곤충, 지네, 게 등): 입의 부속지가 '턱(Mandible)'으로 진화하여 음식을 씹거나 자르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협각아문(거미, 전갈, 투구게 등): 턱 대신 첫 번째 부속지가 '협각'으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거미는 '씹는' 행위를 하지 못하고 '찌르고 빨아먹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요약

협각은 거미에게 있어 '주사기 기능이 있는 다목적 집게'와 같습니다. 거미가 곤충과 달리 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인 진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